[연구실의 바보들] 내 연구가 삶보다 가치 있기를

[연구실의 바보들] 내 연구가 삶보다 가치 있기를

평범한 한량 공대 대학원생입니다. 



지하 1층 UTM 실에는 항상 기분 나쁜 냄새가 났다.


수도꼭지에서 새는 물의 꿉꿉한 냄새도 아니고, 유압 오일의 타는 듯 매캐한 냄새도, 공기 중에 빼곡하게 퍼져있는 시멘트 가루 냄새도 아니었다.


꼭 맞는 말은 아니겠지만, 굳이 말하자면 죄악의 냄새에 가까웠다.


우리가 죄를 지으면 불현듯 맡게 되는 냄새 중 하나 말이다. 따라서 UTM 실은 나에겐 실험 장비가 있는 공간이 아닌 하나의 고해성사실에 가까웠다. 



하긴 내가 한 짓거리를 돌이켜보면 그럴 만도 했다.


그간 얼마나 많은 콘크리트 시편을 이 기계장치 속에 넣고 부셔왔는지 알 수 없다.


아무런 결과도 없이 그저 깨고 버려버린 시편이나, 중간에 실험을 포기한 시편도 부지기수다.


어쩌면 아파트 한 동은 무리일지 몰라도 한 층 정도는 넉넉히 될 콘크리트를 말이다.


내가 한 행동은 콘크리트의 합목적성을 살해하는 행위에 불과했다.


그 수많은 콘크리트의 원혼이 공기 중에 남아 UTM 실을 떠돌고 있으리라.



그런 생각을 하면 갑자기 갓 탈형한 신선한 콘크리트에서 나는 냄새가 방안을 가득 채우는 듯했다.


막 지은 아파트 복도에서 나는 내음 말이다.


그리고 그 콘크리트의 망령들은 나에게 말했다.


어서 다음 콘크리트도 부숴보라고 말이다.


얼마나 많은 고통과 죽음 끝에 비로소 만족하는지 보자고 말이다.


냄새에 머리가 벌써 아프다.


나는 한 손에는 연구 노트를, 다른 한 손에는 시편 바구니를 들고 착잡한 마음으로 UTM 앞으로 걸어갔다.


유압 펌프의 작동하는 소리가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을 뚫고 곧장 …